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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추다혜차지스 “‘무가’의 별세계로 오세요”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밴드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연트럴파크’ 인근에서 골목 모퉁이를 몇 차례 돌았더니 작지만 반짝이는 ‘제 3세계’가 펼쳐졌다. 국내의 레게, 루츠 음악을 해외로 전파하는 음악 레이블 ‘동양표준음향사’ 사옥.

드레드록스(가닥가닥 꼬아 길게 늘어뜨린)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오정석 대표 안내로 들어서자 푹푹 찌던 바깥 열기가 체감 상 2도쯤 내려갔다. 빨·노·초 삼색의 공연 포스터들과 형형색색의 ‘바이닐’(LP판) 커버들, 냉장고에 가득한 맥주 더미들….

문지방을 넘자마자 시작된 이 시청각적 타격이 동공과 고막을 타고 심장에 내리 꽂힌다. 내적 상상이 코발트블루빛 바다와 하얀 모래사장을 일렁이며 ‘그 곳’으로 이끈다. ‘전설’ 밥 말리(1945~1981)가 기타를 주무르며 튀어나오고, 청춘들이 느리게 어깨를 들썩일 것 같은 그 곳으로...

레게로 세상에 맞선 이 ‘저항’의 음악은 지금 지구 반대편인 서울에서 소박하게 피어나고 있다. 노선택과 소울소스, 킹스턴 루디스카, 신한태와 레게소울…. 주로 레게, 소울에 뿌리에 두고 록과 민요 등 다장르를 접합해온 뮤지션들은 모두 이 레이블을 거쳐 해외에 닿고 있다.

 

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양표준음향사 사옥에서 만난 추다혜차지스. 왼쪽부터 이시문, 김다빈, 김재호, 추다혜.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최근 6인조 혼성 민요 록 밴드 ‘씽씽(Ssing Ssing)’ 출신 추다혜를 앞세운 밴드로 레이블은 ‘무가’로까지 영역 확장에 나섰다. 지난 5월 말 발표된 ‘추다혜 차지스’ 1집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는 평안도, 황해도, 제주도에서 쓰이는 무가에 펑크(Funk), 힙합 요소를 결합한 음악이다. 앨범은 전통음악, 대중음악이 융합하는 최근 국내 음악계의 기조와 맞물려 있다.

2일 오후 3시 반, 연트럴파크 인근 이 레이블 사옥에서 만난 밴드[추다혜(보컬), 이시문(기타), 김재호(베이스), 김다빈(드럼)]는 “무속음악에 관한 현대인들의 고정관념을 깨보고 싶었다”며 “종교적 부분은 배제하고 음악적으로 (무가를) 끌어와 우리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스타일로 구현해봤다”고 소개했다.

2016년부터 ‘굿(전통 무가)’에 매력을 느낀 추다혜가 밴드 결성의 단초다. 씽씽 활동 중 틈틈이 전국을 돌며 무속적 사제(제주도에서는 '심방'이라 부름)를 찾아다녔다.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평안도 다리굿, 황해도 만수대탁굿, 동해안 별신굿…. 서도민요 전공자였던 그에게 이건 또 별세계였다. “소리를 1부터 10까지 예쁘게 포장한 느낌이 민요라면 굿은 그냥 ‘생 날 것’ 그대로예요. 정형화되지 않은 형태, 그런 매력에 끌렸던 것 같아요.”(추다혜)

 

추다혜차지스. 사진/동양표준음향사

이내 밴드신에 암약하던 실력자들이 그를 중심으로 몰려들었다. 2019년 버클리음대 출신이자 노선택과 소울소스 이시문이 기타와 프로듀싱 전반을 맡기로 했다. ‘김오키 뻐킹매드니스’ 김다빈이 드럼 스틱을 잡고 ‘윈디시티’ 김재호가 베이스를 쥐었다. 셋은 ‘차지스’ 역을 맡았다. 밴드는 “‘차지’는 ‘몫’이란 뜻”이라며 “음악은 결국 듣는 이들의 몫이란 의미에서 그렇게 지었다”고 뜻을 풀어줬다.

데뷔작은 두 개의 나뭇가지를 안테나처럼 단 앨범 재킷부터 심상치 않다. 신을 불러내려는 무당이 잠시 숙고하는 듯한 자태. “여봐라” 하는 간드러진 꺾기 첫 소절(첫 곡 ‘Undo’)부터 듣는 이를 ‘당산나무(마을의 수호수)’ 아래로 데려간다. “마을 어귀에서 수호 역할을 하는 500년도 더 된 나무가 우리 음악 같다 생각했어요. 그 밑에는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정자도 있고, 축제 같은 굿판이 열리기도 하니까.”(추다혜)

수록곡들은 크게 세 파트로 분리해 지역별 굿 특색을 살리는 방향으로 제작됐다. ‘undo’와 ‘비나수+’. ‘오늘날에야’는 평안도, ‘사는새’와 ‘unravel’, ‘리츄얼댄스’는 제주도, ‘에허리쑹거야’, ‘차지S차지’, ‘복Dub’은 황해도. 각 지역별 소리들의 특색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평안도와 황해도 굿은 서도민요와 발성이 비슷해요. 낮게 떨거나 짓이기는 음, 요성(搖聲)이 많죠. 제주도 굿은 띄운 소리를 내는 경기민요와 비슷해 그 둘과는 조금 달라요. 서도민요가 ‘첼로’ 같다면, 경기민요는 ‘바이올린’ 같죠.”(추다혜)

 

추다혜차지스. 사진/동양표준음향사

 

무가의 신묘한 기운은 소울풀한 펑크 사운드와 계속해 줄다리기를 하며 얽히고설킨다. 통통 튀는 흑인풍 그루브가 리듬 박자를 넣고, 몽환적이면서도 신기 어린 추다혜의 무복, 굿판의 세계와 30여분 내내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밴드는 “굿을 접목하면서 신선했던 건 발화자로부터 모든 게 시작되고 끝난다는 점”이라고 했다. 신이 인간에게 전하는 말, ‘공수’가 지휘 역할을 하고 모든 악기들은 일제히 그에 맞춰 ‘파티’를 연다. 최근 민요와 록을 접목시킨 보통의 대중음악들처럼 록 편성에 국악 박자를 우겨넣는 일도 없다. ‘날 것’ 그대로의 굿 박자가 규칙을 파기하고 신들린 듯 춤을 추면 악기들은 따라간다. “무가가 지닌 정서, 분위기와 어떻게 호흡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습니다. 무가가 머리면 나머지는 손과 발, 꼬리가 되는 식. 어떻게 한 몸처럼 만들까를 고민했어요.”(추다혜, 이시문)

트리플 타이틀곡 중 하나 ‘비나수+’는 평안도 다릿굿 음가를 뼈대로 “녹음 결과가 잘 나오도록 빈다는 내용”을 담았다. 리츄얼댄스는 제주도 서우제 소리를 근간으로 “영혼과 인간이 뒤섞여 노는 축제적인 분위기”를 표현했다. “너희들 차지로 이 행복을 다 가져가라”는 메시지의 ‘차지S차지’ 후렴은 벌떡 일어나 덩실덩실 춤이 절로 나올 정도로 신명나다. 대다수 현대인들에게 무속은 ‘미신’이란 편견이 있지만 이들은 “어딜가나 사이비가 존재하기 마련인데 유독 무속음악에 대해서만 그 잣대가 심하다”며 “편견 때문에 순전히 음악적, 예술적으로 평가절하되는 현실을 깨보고 싶었다”고 했다.

최근 MBC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소개되자 “됐다”가 육성으로 터져나왔다. “팝송 리스트들 사이 우리 음악이 끼어 있는 자체가 신기했습니다. 첫 공중파가 ‘배철수의 음악캠프’라니 두 말할 것 없이 좋았어요.”(이시문) “그렇다고 국악이나 전통음악의 대중화를 위한 거창한 목표를 지향하진 않습니다. 재미를 따라 가보자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고, 그래서 대중들이 무가의 매력에 끌리게 된다면 그건 부수적으로 기쁠 것 같아요.”(추다혜)

 

추다혜차지스. 왼쪽부터 김다빈, 이시문, 추다혜, 김재호.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추다혜는 ‘씽씽’ 시절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NPR’ 타이니 데스크 출연으로 해외 무대를 경험한 바 있다. 밴드는 코로나19의 세계적 여파가 끝나는 대로 세계 진출도 계획 중이다. “작년 노선택과소울소스로 공연을 갔을 때 러시아 무가 팀의 공연을 보고 ‘무속 음악’의 위력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나무 막대기를 치면서 주술적인 음악을 펼쳐대는데 형언할 수 없는 ‘에너지’를 느꼈습니다.”(이시문) 레게와 루츠 등 장르의 해외 배급, 유통에 일가견이 있는 오정석 대표가 도움을 보태기로 했다. 오 대표는 이들의 음악을 “사이키델릭 샤머닉 펑크”로 해외에 소개하는데 벌써부터 외국 측으로부터 반응이 뜨겁다.

세계적 대재앙이 지구를 덮은 이 시점, 무가의 의의나 역할도 되새겨 볼만 하지 않을까.

“무가에는 누군가를 위한 ‘치유’의 의미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음악이 개개인의 마음을 터치할 수 있고 그것이 즐거움과 안정으로 느껴진다면 그것이 예술로서 무가의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추다혜)

밴드는 조만간 국내 시골 지역 어느 당산나무 밑에서 온라인, 오프라인 연계 공연도 고민하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친 상황, 축제 한 판 벌일 계획에 벌써부터 신나 있다.

마지막으로 이들에게 데뷔작을 여행지에 빗대달라고 요청하니 만담이 오간다.

“저는 한국식 잔치와 스페인 EDM 페스티벌이 뒤섞인 여행지라 생각합니다. 접신을 하는 듯한 무아지경은 그쪽 나라의 트렌스 장르와도 아주 밀접한 것 같아서요.”(김재호)

“샤먼체험, 영적체험이 가능한 곳!”(김다빈)

“이 음악으로 북한도 가볼 수 있지 않을까, 가서 평냉(평양냉면) 한 그릇 때리고”(이시문)

“애초 우리나라의 모든 굿 소리를 다 모을 작정이었거든요. 동해안 별신굿부터 함경도 동쪽 관동 굿까지 건드려볼 겁니다. 그래서 저는 한라에서 백두까지.”(추다혜)

“우리 다음 앨범도 굿이야? 나만 몰랐어?”(김재호) 

“와하하하”(모두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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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추다혜차지스 “‘무가’의 별세계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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